19살이었던 곤지가 세상을 떠났다.
약 2살 정도였을 때, 형이 고양이 카페에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아마도 사람들에게도) 강한 트라우마가 있어보였던 녀석을 데려왔었다. 처음엔 깡마른 상태였고, 사람을 무서워했다. 집에 이미 같이 살고 있던 비슷한 나이의 다른 고양이(왕건이)와도 전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엄마는 곤지가 사람 눈도 안마주치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펄쩍 뛰며 놀라는 것을 볼 때마다 자폐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데려온 이후 몇 년 간은 딱히 억지로 친해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그저 최대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도로만 신경을 썼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점차 곤지도 마음을 열었고, 적어도 나에게는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고 다가와주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녀석의 상태는 좋아졌지만, 4-5년이 지나고 내가 부모님 댁에서 더 이상 함께 지내지 않게 되면서 한동안은 곤지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그 후에 7-8년이 지난 후에 부모님댁으로 내가 돌아오면서 다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3년 전, 부모님과 나는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고 서울의 좁은 아파트에서 제주의 넓은 주택으로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두 녀석들이 모두 회춘하는 듯 보였다. 이미 둘 다 나이가 16살인 상태였는데 (비록 이때까지만 해도 딱히 크게 노쇠하거나 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사를 온 초반 몇 달 동안은 마치 5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매일을 여기저기 집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뛰어놀며 기운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은 육지로 올라가시고 나와 고양이들만 제주에 남게된 지 보름이 지난 날, 곤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사실 이미 나이가 19살이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한달 쯤 전부터 급속도로 컨디션이 악화되었고, 예전과 다르게 회복이 되지 않았었다. 특히나 그 전까지만 해도 밥도 너무 잘 먹어서 도리어 체중도 늘어가고 있었는데, 마치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보다도 더 심하게 뼈만 만져질 정도로 깡말라갔고, 나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하며 자꾸만 넘어졌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도 모르게 그런 곤지의 모습을 보며 “한 달을 넘기기는 쉽지 않겠다.” 는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난 다음 날 오전, 곤지는 세상을 떠났다.
제주에는 동물 장례식장이 없다. 안그래도 두어 달 전부터 두 녀석들 다 잠이 너무 많아지고 식사량도 반도 안되게 줄어들어서 먼 미래일 줄만 알았던, 이 녀석들이 떠나는 날들을 이제는 정말 대비해야할 것 같아서 얼마 전에 알아보았더니, 제주에는 대신에 이동식 반려동물 화장 업체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래서 곤지가 떠난 그 날 예전에 찾아놓았던 화장 업체에 연락을 해서 2시간여 만에 바로 화장까지 마무리하였다.
곤지를 화장할 때에 여쭤보니 해당 반려동물이 지내던 작은 침대나 방석은 같이 처분도 해주신다고 하여 곤지가 거의 항상 누워있던 마분지 긁개도 같이 처분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많이 해지기도 했지만, 그 긁개를 볼 때마다 곤지가 너무 생각이 날 것 같아서가 더 큰 이유였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곤지가 항상 누워있던 곳을 볼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은 물론이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곤지를 항상 체크하는 버릇이 있었다는 것 까지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문이나 창문을 닫을 때 혹시나 여기에 갇히거나 낑기지는 않을까 확인하거나, 아무도 없는 방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곤지가 저기서 뭘 하고있나 문득 생각을 하게 되고(왕건이는 거의 항상 내 곁에 있기에), 방에 있다가도 갑자기 밥그릇 앞에서 밥을 달라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이내 깨닫고 물만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거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그냥 자고 있더라도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던 버릇들까지…
화장은 했지만 아직 재를 어떻게 할 지, 일종의 장례 의식을 어떻게 할 지는 정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것이 감정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내일이면 곤지가 떠나간지 열흘째인데, 아직도 문득문득 그리움과 더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함들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